블로그 이미지
길거리를 지나다 눈에 들어오는 작은 들꽃처럼 그저 스쳐가기 쉬운 아름다운 순간들을 정감있는 시선으로 함께 나누는 공간입니다.
by 바다시선

NOTICE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CLOUD

  • Total :
  • Today :  | Yesterday :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8)
일상의 풍경을 쓰다 (4)
별 하나 그리움 하나 (4)
오늘은 뭐 먹을까 (4)
북 힐링 이야기 (2)
여행을 떠나자 (1)
시 한모금 차 한모금 (0)
취미는 뭔가요 (1)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ARCHIVE

LINK



 

엄마, 나 입안이 헐어서 따가워요" 하고 응석어린 표정으로 입을 아~ 벌리면

미리 만들어 두셨던 하얀 백반가루를 입안에 발라 주시곤 했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마 한 40대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 나는데

어느날 백반 덩어리를 오래도록 팬에 정성껏 볶아 고운 가루를 만들어서

두고두고 입이 헐었을 때 쓰라고 들고 오셨다.

나중에 무엇인지 모르면 안되니까 어눌한 글씨로 '백반' 이라고

또박또박 써주신 그 마음을 알것 같은 지금, 어머니 모습은 마주 할 수가 없다.

요즈음도 피곤하거나 하면 간간이 입 속이 따갑고 헐곤 하는데

그때마다 면봉에 묻혀 며칠동안 발라주면 신기하게 낫는다.

'백반'이라는 글씨를 볼때마다 엄마 마음이 생각나서 찡하다.

 

오빠만 둘 있고 막내딸로 자라나다 보니 아버지 엄마 사랑을 많이 받았다.

큰오빠랑은 8살 차이, 작은 오빠랑은 살 차이라서 서로 싸움 상대가 안되다 보니

크게 다투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

막내이고 딸이고 하니 일 많은 우리 엄마를 좀 도와드렸으면 좋으련만

밥상에 수저 놓는 일도 시키지 않으면 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딸이었다.

9남매의 맏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삼촌, 고모들을 차례로 결혼 시키느라 애쓰고

시골에 사는 사촌조카들이 조금 아프거나 하면 서울 우리집으로 올려보내

치료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 모든 치닥거리를 묵묵히 해내시는 엄마를 왜 그리도 도와드리는 일손이

되어 드리지 못했는지 못내 죄송한 마음 가득하다.

 

양반집 여자들은 글을 배우거나 교육을 시키지 않는 관습 때문에

학교에 다니신 적이 없었다.

한글을 꺠우치신 것도 몰래 숨어서 야학에서 어깨너머로

배우셨다고 한다.

평생 배우지 못한 것이 깊은 한이 맺혀서

자식들 셋은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보내 가르치셨다.

학교에 다니신 적이 없지만, 타고난 지혜로움과 명석한 두뇌로

집안일 처리하시는 현명함을 갖추셨고 집안을 부유하게 일구시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이셨다.

 

살아계실 때 모습으로 마주 할 수 없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엄마의 깊은 지혜를 생각하면서

삶의 기준을 잡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셨으며,

가장 좋은 친구였던 엄마가 나의 어머니 이셔서 참 고마울 따름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순간순간 문득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에선가 행복하게 태어나셔서

더 멋진 삶을 살고 계실거라고 믿는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걸어간다면

나중에 엄마를 만나면 활짝 웃으며 반갑게 안으며 토닥여 드리면서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제 곁에 머무시는 동안 정말 행복했고 참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요" 라고.

 

'별 하나 그리움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중전화가 거기에 있었지  (0) 2019.10.16
엄마밥이 먹고 싶은 날  (0) 2019.10.11
오래 전 살던 풍경  (0) 2019.10.10
And